#장면 1: 미국 시카고의 쉐라톤호텔은 투숙 고객들이 블랙베리를 맡기면 호텔 사물함에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잠시라도 블랙베리를 통해 이메일을 체크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투숙객들이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거나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비스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호텔 매니저 릭 우노씨는 “블랙베리 중독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고객들을 위해 보관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장면 2: 얼마 전 미국의 금융 중심지 월가에선 이메일을 제때 전달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블랙베리 서비스가 10시간가량 중단되면서 일대 혼선이 빚어진 것. 사업상 급히 이메일을 체크해야 하는 이용자들은 크고 작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고로 블랙베리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며 디지털 기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전문직 종사자 중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블랙베리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블랙베리 개인의 이메일 계정에 배달된 메일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아 언제, 어디서든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로 캐나다의 림(RIM)사가 개발했다.
이메일 외에도 문자 서비스와 이동전화, 기업 업무에 필요한 일정관리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서 작성, 표 계산 같은 프로그램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0여개국 800만 정도의 가입자가 있다.
특히 북미에선 금융, 제조, 유통 등 전 업종에 걸쳐 업무용으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난 2003년 미국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기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PC는 모조리 먹통이 됐지만, 블랙베리는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때부터 블랙베리는 유명세를 탔다.
이전에는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요 부서 담당자들에게 블랙베리를 비상연락망으로 사용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분기마다 사용자가 100만명씩 늘어날 정도로 성장세가 빠르다.
미국과 캐나다 대도시에선 블랙베리로 이메일을 체크하는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99년 처음 등장해, 그 편리함 때문에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에서 ‘크랙베리(코카인 열매)’ 로까지 불릴 정도.
블랙베리는 북미 직장인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스마트폰시장에서 림사의 점유율은 45%로 부동의 1위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블랙베리는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공했다”는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블랙베리 성공 비결로 통신업계에선 이메일 자동수신 기능과 컴퓨터 키보드와 비슷한 구조의 자판을 든다.
일부러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아도 이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자동으로 알려주는 서비스와 쉽게 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기능으로 기업과 직장인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 국내 사용자는 1000여명 수준 불과 ■
최근엔 지나친 블랙베리 사용으로 회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GE 등 일부 기업들이 회의시간에는 블랙베리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세계적 화제를 일으키는 블랙베리지만 국내에선 사용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6월부터 KT의 주파수공용통신(TRS) 자회사인 KT파워텔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용자 수는 미미하다.
김정태 KT파워텔 팀장은 “림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외국계 기업과 컨설팅· 회계법인 등에서 1000여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KT파워텔에서도 블랙베리 서비스를 현재 주파수공용통신 가입 기업들에 대한 부가 서비스 정도로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블랙베리가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못하는 데는 문화적 차이와 함께 기술적 장벽이 있다.
일단 국내의 경우, 이동통신의 발달로 문자메시지나 휴대전화를 통한 무선 인터넷 사용이 널리 퍼져있다.
블랙베리 서비스 도입을 계획하다 보류한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이메일보다 문자메시지나 무선 인터넷 등을 통해 업무를 바로 처리하는 비중이 높아 수요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적 문제도 있다.
국내에선 이동통신 업체들이 휴대전화에 한국형 무선 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 잠깐용어 참조)를 탑재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위피와 블랙베리의 운영체제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 블랙베리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별로도 내놓아야 하지만 걸림돌이 만만찮다.
백창돈 SK텔레콤 매니저는 “위피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복잡한 데다, 제도적 문제도 있어 블랙베리 도입을 보류한 상태”라며 “국내 이동통신의 문자메시지 기능이나 무선 인터넷 기능이 발달해 있어 시장성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막강한 경쟁상대도 등장했다.
KTF와 SK텔레콤의 HSDPA(잠깐용어 참조)와 KT의 와이브로 서비스 등이다.
HSDPA와 와이브로 가입자들은 이동 중에도 초고속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HSDPA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나 와이브로 단말기 등이 보급되면 굳이 별도의 블랙베리용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 KT는 최근 다음·네이버·파란·네이트 등 주요 포털 업체와 손잡고 와이브로 ‘통합 웹메일’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와이브로 가입자의 경우 별도의 추가요금 없이 와이브로폰을 통해 주요 포털사의 이메일 서비스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다.
KT 측은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메일의 90%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힌다.
블랙베리의 경우 다른 무선 인터넷 서비스와의 호환성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지만, KT 와이브로는 이메일 계정을 무제한 등록할 수 있다.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이용하는 월 기본료를 내야 하지만, 와이브로 이용자는 별도의 사용료가 없다.
또한 블랙베리는 메일을 텍스트 문서로만 보여주는 반면, KT 와이브로 통합 웹메일은 그림이나 이미지를 원문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오피스 프로그램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 작성하거나 수정해 첨부파일로 전송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KT 측은 일단 개인 사용자가 서비스 대상이지만, 블랙베리의 주무대인 기업으로도 시장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통신 솔루션 전문기업 크리니티(대표 유병선)는 휴대전화를 통해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는 ‘27핸드폰메일’을 선보였다.
가입자는 크리니티 메일 서비스에 가입한 후, 휴대전화를 통한 이메일 확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시범 서비스 중으로 6월부터 정식 서비스가 개시될 예정이다.
27핸드폰메일은 전용 단말기 없이 조직도, 주소록을 연동한 그룹 메일 발송, 수신확인 문자메시지 등 PC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기업 가입자의 경우 메일 서버 세팅이 완료되면 회사 메일과 휴대전화를 통한 이메일 확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네트워크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어 굳이 블랙베리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면서 “초고속 무선 인터넷을 활용한 다양한 기능의 웹메일 서비스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
▶ 잠깐용어
·위피(WIPI): 이동통신 업체들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낭비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2001년부터 국책 사업으로 추진됐다.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란 이동전화 단말기에서 퍼스널컴퓨터의 운영체계(OS)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본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이동통신 업체들이 회사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선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사용하면 콘텐츠 제공업체들도 같은 콘텐츠를 여러 개의 플랫폼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불필요한 낭비 요소가 발생하게 되는데, 위피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낭비 요소를 줄일 목적으로 탄생했다.
현재 무선 인터넷이 되는 휴대전화는 위피 탑재 휴대전화다.
·HSDPA: High-Speed Downlink Packet Access의 약자. 4.5세대 이전 단계의 멀티미디어 기술로 국내에선 SK텔레콤과 KTF가 사용화에 성공했다.
버스, 지하철, KTX 등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원활한 동영상 통화는 물론 대용량의 멀티미디어 다운로드, 고속 무선 인터넷 접속 등이 가능하다.
[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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