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에 따르면 1996년까지 200건 정도에 머물던 숫자 상표가 1999년 이후 평균 3,000건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숫자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이전에도 숫자는 일상생활의 편리를 위해 다양하게 응용되어 왔다. 예를 들면 전화번호를 쉽게 인지시키기 위해 이삿짐 센터는 2424, 정유회사는 5151을,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 삐삐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신속한 의사전달을 위해 주고 받았던 8282, 1212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에는 1318, 2030, 386 등 각각의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숫자 마케팅의 초기 형태라면 이른바 ‘골드번호’라고 불리는 전화번호를 확보하여 문의 빈도를 늘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골드번호라고 하는 것은 ‘0000’ ‘5656’ ‘1004’ 등 번호의 연속성을 통해 기억의 용이성을 확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숫자는 인간의 편의상 만들어진 계산, 순서, 구분 등을 위한 단위이지만, 인간의 머리 속에서는 나름대로의 경험과 기억, 연상을 숫자와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긴 우리의 인간사에서 숫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숫자에 의미를 부여,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실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숫자 마케팅이 각광 받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흔하게 접한 숫자가 친숙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품의 성공요인은 복합적이기에 반드시 제품명에 숫자를 붙였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려운 외래어를 붙이는 것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를 붙이는 것이 메시지 전달에는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차이를 어려운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를 통해 표현하면 바로 객관적인 의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하며, 문자는 다소 주관적인 의미를 줄 수 있으나 숫자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숫자라는 부분이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제품의 기능을 강화시켜줄 때 알파, 베타를 붙이거나 버전 1.0 이런 식으로 붙일 수도 있고,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아이콘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제품의 효력, 효과적인 부분을 강조해줄 수도 있지요.” 무의미한 숫자들이 이어지게 되면 오히려 기억하기가 더 힘들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타겟층이 젊은 세대일 경우에는 모호한 숫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단다.
특히 의류브랜드에 그러한 사례가 많은데 ‘스톰292513’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스톰’사의 경우, 이 회사 사장이 딸을 낳은 것을 기념해 자신의 딸 주민등록번호를 붙인 것이다. ‘29’는 유니섹스 의류, ‘25’는 여성의류, ‘13’은 남성의류를 뜻하기도 한다.
제일모직이 런칭한 ‘SS311’은 Six jour Sports 311(프랑스어)의 약자이며, 숫자 ‘311’은 일년 365일에서 일요일(54일)을 뺀 나머지 311일을 의미한다. ‘콕스(C.O.A.X)’는 낯선 숫자를 등장시킨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로 76이라는 숫자는 바로 콕스의 상징이라고 한다. 76은 유럽에서 히피 문화가 처음으로 정착된 해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왕가위 감독의 <2046>, 영혼의 무게라는 <21그램>,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 따온 <69> 등은 숫자를 제목으로 활용한 영화들이다.
“14는 특히 마케팅 데이라고 할 만큼 자주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숫자입니다.〈천일야화>에서는 아름다운 사람을 ‘14번째 뜨는 보름달’이라고 지칭하지요.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4월 14일은 블랙 데이 등 달마다 14일과 연관을 시켜서 활용합니다.”
그는 아직까지 숫자마케팅의 어떤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해내지는 못했지만 외견상으로 보이는 몇 가지 속성은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첫째 가급적 짧을 것, 7~8자리 전화번호도 단박에 기억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의 기억력이므로 여러 숫자 마케팅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게 2~4 자리의 숫자가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언어, 문화적 특성과 결부가 강할수록 강력하다. 1004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천사는 우리말로만 숫자화 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다. 0579(영어친구)도 마찬가지. 셋째 가치나 편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발상이 필요하다. 특정 나이 혹은 날짜 등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은 발렌타인데이(일본의 쵸콜릿회사), 빼빼로데이(11월 11일) 등에서 벤치마킹 할 수 있다. 참고로 ‘데이 마케팅’의 성공신화라고 할 수 있는 빼빼로 데이는 제조사인 롯데제과에서 만든 날이 아니란다.
부산의 한 여중생이 11월 11일에 친구들끼리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라는 의미로 빼빼로를 교환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아뭏튼 이 날을 대대적인 마케팅 수단을 활용한 롯데제과는 이 기간에만 연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팔린다고 하니 숫자 마케팅의 파워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거꾸로 숫자를 탈피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어느 기업의 강의장에 갔더니 101호, 202호 등의 숫자가 아니라 ‘백두산’ ‘한라산’ 등이 방이름으로 적혀 있더군요. 아직은 숫자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얼핏 들면서도 정감은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의 동네 이름에서도 ‘역삼동 619-17번지’ 등의 표기도 좋지만 ‘역삼동 꽃마을길 붉은 담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친근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케팅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기저에 깔려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숫자가 아니라 ‘숫자마케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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